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석(朴魯錫)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9

공훈사항

박노석 순경은 1924년 10월 8일 전북 곡성군 북일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군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함양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군산경찰은 군산-서천, 군산-곡성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와 군산항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북경찰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각 서(署)의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충남지구의 지연전에 참가하도록 조치했고, 잔여 경찰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했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이어서 7월 20일 곡성을 점령했고, 그 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하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전주를 점령한 적이 7월 24일 남원으로 남하함에 따라 남원의 민기식 부대 등 군 일부 병력은 함양으로, 일부는 구례로 이동하였으며 군산경찰을 비롯한 전북경찰은 운봉으로 집결했다. 남원 운봉에 집결한 전북경찰 300명은 전북경찰국장 지휘하에 군병력 500명과 합동작전으로 남원탈환을 시도했으나 성과를 보지 못하고 육십령으로 철수했다.
육십령에서 방어작전을 수행하던 전북·경남 경찰부대는 북한군 1개 연대규모의 공격을 받아 방어선이 무너져 일부는 안의로 후퇴하고, 일부는 산복에서 저항을 계속했다. 7월 29일 북한군 1개 대대규모가 함안군 산복면을 공격했는데, 이때 산복에서 방어작전을 수행하던 박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석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ㅍ-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