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문(朴魯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80370
  • 전몰일자 : 19530504

공훈사항

박노문 일등중사는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現 여주시 세종대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하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노문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여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은 홍천 일대 풍암리까지 조직적으로 격전과 철수를 반복하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했다.
8월에 접어들어 제5사단이 배속된 美 제10군단은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36연대는 8월 16일부로 美 제2사단에 배속과 동시에 캔자스선 진지를 감제하며 위협을 주는 양구 북방 983고지-940고지-773고지를 잇는 ‘피의 능선’을 美 제9연대와 병행 공격하여 9월 7일 목표를 탈취했다. 박노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6연대가 복귀한 사단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에서 가칠봉과 서희령 전선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10월 20일부로 양양으로 이동했다.
1952년 1월 23일부터 제5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다가, 적이 7월 10일 밤 10시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진지가 피탈되었으나 사단은 즉각 역습으로 주방어선을 지켜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제5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4월 15일 화천 일대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면서 주진지와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사단의 전초진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 및 오봉능선과 삼각봉을 공격해 왔으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박노문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통제하며 주진지인 949고지를 보강 중 5월 4일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문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5-ㄱ-01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