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마(朴老馬)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1705126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박노마 병장은 1929년 3월 23일에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25일, 강원도 춘천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연대 본부를 춘천에 두고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했다.
박노마 병장이 소속된 제7연대는 당시 북한군 침략에 대비해 방어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 전선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연대 장병들은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이후 연대는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주를 거쳐 7월 1일에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4일 음성으로 급히 투입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후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와 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8월 3일에는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낙동강 선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북한군은 8월 5일에 낙동강을 건너 공격했고, 사단 장병들은 8월 10일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신령 북방 고지군에 배치되었다. 8월 말에는 화산 탈환작전을 실시하여 8월 31일에 화산을 탈취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최후 결전의 형태로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박노마 병장이 소속된 제7연대는 화산–725고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적의 대공세를 저지했다. 유엔군은 9월 7일부터 포병 화력과 미 공군 전폭기의 항공폭격을 지원받아 대규모 적들을 적을 격멸했다. 결국 적들은 공격기세가 점점 약화되었고, 9월 12일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처음엔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9월 21일까지 돌파하지 못했으나, 22일부터 북한군이 퇴각하면서 추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함창을 거쳐 9월 29일에는 충주를 점령하고, 10월 1일에는 원주를 탈환했다. 박노마 병장은 분대장으로서 북한군을 추격할 때에 선두에서 진격했으나, 이날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마 병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0-ㅎ-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