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근(박노근)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6300081
  • 전몰일자 : 19510310

공훈사항

박노근 일등중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신기동에서 1930년 12월 1일에 출생하였다. 박 일등중사는 1949년 6월 15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등중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단양, 제천 등 총 8개 군 지역에서 북한의 무장유격대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50년 4월 22일까지 시행되었던 공비토벌작전은 북한유격대와 공비들을 전부 소탕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토벌 작전을 마친 제8사단은 강원도 강릉으로 이동하여 경계 작전을 수행했다.
북한군 제5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이에 강릉에 주둔해 있던 제8사단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적의 화력에 주문진을 상실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박 일등중사가 속한 제8사단은 1950년 8월 낙동강까지 후퇴를 하였지만 9월에는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9일 연천 남방에 도달했다. 이후 1950년 10월 24일 서북방의 239고지에 잠복하여 저항을 기도하는 적 약 1개 대대의 병력을 포위하고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했으며, 도주하는 적을 격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제8사단은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그 결과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병력과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해 돌진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이내 곧 매복해 있던 적군에 포위당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나 사단의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 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1951년 2월 12일 적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제8사단은 아군의 증원을 기다리며 방어했지만 아군 전선에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가 제8사단은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일등중사는 1951년 3월 10일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근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패(23판-3면-91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ㅂ-00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