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균(朴魯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5601185
  • 전몰일자 : 19501029

공훈사항

박노균 이병은 1928년 2월 27일에 충청남도 대덕군 북면(現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24일 입대하여 제1공병단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박노균 이병은 경상북도 고산에 위치한 제301공병교육대로 전속되어 공병 주특기교육을 수료한 후, 제1201건설공병단에 배치되었다.
제1201건설공병단의 전신인 제1공병단은 1948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대대와 제1자동차중대, 제1정비중대, 제1공병기지중대, 공병중공장중대, 경장비중대를 통합하여 창설되었다. 당시 공병단은 공병 확장과 교육, 그리고 진지구축과 장애물 설치작업에 전념했다.
육군본부는 6·25전쟁 발발 후 1950년 8월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이때 박노균 이병은 제1102야전공병단으로 전속되었다. 제2군단은 1950년 7월 12일 경상북도 함창에서 창설되었고, 북진작전 때는 제6・7・8사단을 배속 받아 작전을 했다. 제2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5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제6사단은 제2군단의 주공으로 신녕-충주-원주-화천 모진교-평강-신고산-원산-양덕을 거쳐 성천-순천-개천-희천-초산으로 진격하여 10월 26일 압록강변의 초산까지 진출했다. 제8사단은 조공으로 의성-안동-양평-미아리-동두천-평강-곡산을 거쳐 성천-가창-북창-덕천-희천으로 진격하여 10월 26일 구장동, 희천까지 진출했으며, 제7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다가 포천–김화-평강-신계-수안-율리를 거쳐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했다.
제2군단사령부는 양평을 경유하여 10월 3일 서울의 보성중학교로 이동했고, 이후 곡산-평양-개천으로 진격했다. 북진작전 간 1102야전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를 함으로써 전방 사단들과 군단에 대한 보급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박노균 이병은 1950년 10월 29일 평안남도 개천 일대 주보급로 보수 작업 중에 적 정찰대의 습격을 받고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균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4판-8면-03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3-ㅁ-08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