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규(박노규)

  • 군별 : 육군
  • 계급 : 준장
  • 군번 : 10216
  • 전몰일자 : 19510304

공훈사항

박노규 준장은 1919년 3월 14일에 전라북도 전주시 고사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6년 9월 23일에 육사 제2기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교육훈련과정을 수료한 후 12월 14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여러 부대를 거쳐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제31연대장으로 보직되었다.
제2사단은 7월 20일 함창에서 해체되었다가 11월 7일 서울에서 제17, 제31, 제32연대를 예하 부대로 재창설되었다. 박노규 준장(당시 대령)은 제31연대 창설 책임자로 11월 13일에 연대를 창설했다. 그가 지휘하는 제31연대는 홍천 일대에 주둔하며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얼마 후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제2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드디어 제3차 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박노규 준장은 제31연대를 지휘하여 방어선을 사수하고자 했으나, 이미 중공군의 일부 부대가 후방을 차단하여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대는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철수하여 가평을 거쳐 1월 7일에는 충주에 집결한 후 부대를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2사단은 2월 12일에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 및 보현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0사단의 패잔병들을 소탕하게 되었다. 박노규 준장이 지휘하는 제31연대는 2월 28일에 청송방면의 북한군 제10사단이 북상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사단 명에 의거 투입되어 일월산 남서쪽의 장갈령을 차단하여 3월 1일 새벽에 북한 중인 북한군 1,500여 명을 기습공격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이 무렵 제17연대와 제32연대는 보현산 일대에서 일월산 남쪽으로 이동하여 일월산 일대를 3중으로 포위하여 차단하였다.
박노규 준장이 지휘하는 제31연대는 3월 5일까지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 제10사단 패잔병들은 대부분 사살되었고, 일부는 분산된 채 북상 도주함으로써 이 일대에서의 게릴라 토벌작전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작전 중 안타깝게도 박노규 연대장(당시 대령)은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일월산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규 준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5753국) 충무무공훈장 3개(1480국, 2508국, 3881육) 을지무공훈장(218국), 태극무공훈장(2 국)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제1장군 묘역-판-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ㅎ-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