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권(박노권)

  • 군별 : 육군
  • 계급 : 중령
  • 군번 : 12635
  • 전몰일자 : 19520101

공훈사항

박노권 중령은 강원도 홍천군 홍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1948년 9월 중순 육사에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9년 5월 23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노권 중령은 낙동강전선에 부임하였다. 박 중령이 전선에 부임할 무렵 전황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박 중령의 진두지휘하에 사단 장병들은 9월 중순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며 청송-평창-양양 방향으로 진격하였다.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 작전에 돌입한 후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다. 박노권 중령은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박 중령은 연대병력을 지휘하여 3월 9일 속사리 일대 북한군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박노권 중령의 진두지휘하에 1951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 전투를 실시하여 940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한 연대는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고, 11월 26일 여수로 이동하여 호남지구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박노권 중령은 치열한 포격 및 개인화기로 저항한 상황에서 기관총사수와 부사수가 전사하자 기관총 진지로 달려가 기관총을 난사하였으나 후속하는 적의 수류탄 공격을 받아 1952년 1월 1일 전북 장수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권 중령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4928 육)을 추서하고 유해(54묘역-6판-17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ㅇ-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