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구(朴魯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201146
  • 전몰일자 : 19500831

공훈사항

박노구 이등상사는 1929년 6월 8일에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7년 5월 27일, 그는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는 제주4·3사건 진압작전과 옹진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1949년 11월 15일에 서울 용산의 수도경비사로 복귀하였다.
제2연대는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42km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지형도 잘 모르고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전면적인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후 인제-홍천 축선에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박노구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문경으로 철수했다. 제6사단은 조령(19연대)과 이화령(2연대)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7월 말까지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의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8월 12일 밤 10시를 기해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국통산∼청노동을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박노구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8월 18일 새벽 3시에 적의 공격을 받고 13시간 동안 치열한 전투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연대 장병들은 8월 26일까지 잘 버티었으나 28일에는 신녕 방면으로 철수하여 370고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은 8월 31일에 국군 방어지역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일명 ‘9월 공세’)을 실시했고, 당시 연대 장병들은 370고지 방향으로 공격하는 적 1개 대대 규모를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구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39-ㅇ-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