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관(朴魯寬)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215

공훈사항

박노관 경사는 1930년 3월 27일 경북 군위읍 우보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북도경 군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군위 산성면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군위경찰은 경북경찰의 일부로서 아군이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까지 오열 색출, 정보수집, 주보급로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3일 안동에서 남진한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으로 진군했으며, 문경 방면에서 우회한 북한군 제8사단이 아군 정면을 공격함에 따라 피·아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3일간에 걸쳐 악전고투를 계속한 끝에 경북경찰은 진지를 포기하고 7월 16일 안동에서 군위에 이르는 지연전을 펼치다가 다시 군위에서 후방으로 후퇴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군위경찰은 9월 21일 군위경찰서를 수복하고 치안유지, 주요 보급로 경비, 오열 색출, 철도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1월 23일 새벽에 북한군 제10사단 병력 중 1,000여 명이 안동군 길안면 묵계동을 공격했다. 제207부대 제2대대에 편성된 박 경사는 이날 적을 격퇴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었다. 동 부대는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작전을 수행하여 묵계를 탈환하고, 곧바로 적을 추격하여 500명을 격퇴했다. 이 전투에서 적 117명을 사살하고 소총 11정을 노획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전투 후 박 경사는 군위로 복귀하여 치안유지, 주요 보급로 경비, 오열 색출, 철도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2월 15일 군위 산성면 일대에서 수 명의 공비가 출현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박 경사가 휘하의 병력을 인솔하여 현장에 출동하자 곧바로 적과 교전이 벌어졌다. 박 경사는 적 2명을 사살하고 계속 작전을 수행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관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ㄱ-02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