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념술(朴念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200943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박념술 하사는 1932년 1월 26일에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면(現 경주시 안강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광복 후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8년 7월 10일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제10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복무했다. 연대는 1950년 4월 22일까지 진행된 공비토벌작전을 마치고 강릉에 주둔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기습남침을 감행했고, 아군은 열세한 상황에서도 3일 동안이나 강릉을 지탱했다. 이때 박념술 하사는 북한군과 교전하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건강을 회복하여 10월 초순경 제5사단 수색대로 재배치되었다.
제5사단은 전쟁초기에 입은 손실로 7월 5일 국군의 부대를 재편성할 때에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되었다. 당시 사단은 국군 및 유엔군의 북진작전으로 10월 8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엄호하기 위해 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투입되어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아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은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가평-횡성-여주-영주 일대로 철수했으며,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사단은 다시 전방에 투입되어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하였으나,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2월 공세)을 받고 철수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에 新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횡성 일대의 봉복산-태기산 전투(3월),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냈다. 이후 사단은 4월 10일에 인제 방면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마침내 중공군 제12군은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공격(일명 5월 공세)을 감행했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격전을 치르면서 포위망을 탈출하여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박념술 하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중공군 5월 공세 시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홍천 북쪽에 있는 중공군 사단 지휘소를 파괴하려고 습격 중 5월 17일 적 경계병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념술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92 국)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ㅅ-08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