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년수(朴年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5306350
  • 전몰일자 : 19510921

공훈사항

박년수 이등상사는 1928년 11월 26일에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출생하였다. 박 이등상사는 1948년 9월 29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등상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 제21연대는 무장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되었다가 동해안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박 이등중사가 속한 제8사단 제21연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을 받았다. 아군은 짙은 안개와 적의 양면 기습으로 인하여 적의 병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불리한 전투를 개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군 장병의 사기는 왕성하여 소수의 38도선 경비부대는 압도적인 적의 공격을 저지하며 비장한 전투를 계속했다. 제21연대는 10월 3일부터 미아리-동두천-전곡리를 거쳐 10일에는 철원 지역에 진입했다. 적은 수도 서울을 아군이 수복한 이후 전의 상실하여 계속 북방으로 도주하다가 10월 8일 연천지구에 집결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아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21연대는 10월 23일 곡산지구전투와 석봉지구전투를 전개한 후, 강동-성천-북창으로 진격했다. 제8사단은 11월 영원에서 만포진과 중강진을 점령하라는 군단의 작명에 의거하여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청천강의 요충지인 구장으로 진출한 후 계속 희천에 진출하여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6사단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했다.
이후 제21연대는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하였고, 1951년 7월 말 성공적인 철미동 지구 전투 이후 후방 경계를 비롯하여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던 제21연대는 1951년 8월 미군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의 제한목표공격계획을 통해 동부전선의 방어선을 전진시켰다. 1951년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강원도 인제군 서화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 북한군의 전초기지를 공격하며 제2군단 제2사단, 제13사단 및 제3군단 제15·제45사단과 3차에 걸쳐 고지쟁탈전을 전개하여 1951년 9월 10일 오전 6시를 기해 3개 연대가 동시에 공격을 개시해 11일까지 854고지를 제외하고 주변의 대부분의 고지를 점령했으나, 이 과정에서 박 이등상사는 1951년 9월 21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년수 이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장병1묘역-105판-묘비3989)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ㄹ-09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