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내환(박내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501251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박내환 일병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던 1950년 7월 2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훈련소 제5교육대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16일부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전남편성관구사령부 예하 제15연대가 제5교육대로 개칭되어 광주에서 대구로 이동하여 경북편성관구사령부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이때 박내환 일병은 제5교육대 조교로 전속되었다. 그 이후 8월 14일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대구에서 제1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6일 제1훈련소에 제1·2·3·5·6·7·8·9교육대가 통합 편성되었다.
박내환 일병이 제5교육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거의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고, 훈련소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한 후에는 미처 도주하지 못한 패잔병들이 대구 인근의 팔공산(1,192m)이나 보현산(1,126m) 등을 근거지로 하여 이들 빨치산들과 연계하여 후방교란활동을 계속했다.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와 시설 등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제1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수행해 왔다. 1951년 2월 12일 대구 서북쪽 보현산 일대에 적이 출몰하여 훈련소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박내환 일병은 적들을 탐색하여 추격하던 중 적들의 기습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내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패(23판-32면-1703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5-ㄱ-04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