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내학(박내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90023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박내학 일병은 1927년 10월 6일에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후퇴하며 지연전을 실시하던 1950년 7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20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내학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하순, 제11사단은 영천에서 창설되어 후방지역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10월 중순에 전남 남원으로 이동하여 지휘소를 설치하고 호남지역에 대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사단은 1951년 4월까지 공비토벌작전임무를 완수하고, 4월 6일에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전방작전에 투입되었다.
제11사단은 공산군의 4월 공세와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쌍방은 방어진지 보강에 힘썼다. 박내학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1952년 4월 15일에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7월 11일에 양양에 위치한 사단으로 다시 복귀하여 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했다. 그리고 전선은 전투상황이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11사단은 1953년 6월 10일에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의 산양리, 하로곡, 동지화로 이동하여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사단이 화천 일대로 이동한 것은 이 일대에 중공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진 조치였다. 예상대로 중공군은 휴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7월 13일 야간에 중동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에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은 주파령에서 적근산을 잇는 미주리선으로 후퇴했다.
박내학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7월 14일에 주파리-적근동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점령하고 군단의 철수를 엄호했다. 그리고 연대는 7월 15일에 적근산-삼현지구에 대한 반격작전으로 7월 18일에 602고지를 탈취하고 금성천 만곡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백암산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그는 7월 16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내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5면-0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ㅍ-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전사 일자, 군번, 출생 일자 및 장소를 고려할 때 제20연대 박래학 이등상사와 동일 인물로 추정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