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현(朴南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사
  • 군번 : 5305639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박남현 중사는 1928년 5월 13일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8년 7월 10일 제3여단에 입대하여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1949년 7월 10일 제2사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 위치하고 있던 제5연대(-)는 전투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소총탄 8~30발 정도만 휴대하고 의정부 북방의 축석령으로 투입되었다. 연대는 6월 26일 축석령 방어선에서, 27일에는 창동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제107전차연대를 맞아 분전했으나, 적 T-34 전차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없었던 탓에 돌파당하고 말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산 철수하여 28일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연대는 29일 밤 수원에서 긴급 재편성을 한 후,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7월 4일까지 말죽거리, 과천, 안양 남쪽의 426고지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의 남진을 지연하다 수원으로 철수했다. 제2사단은 7월 13일 문의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7월 16일 이후 제5연대는 보은군 회인 일대와 청주 일대에서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을 지연했으나, 전투력이 극히 저하되어 7월 25일 해체되어 제11연대에 편입되고 말았다.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민부대에서 제5연대로 개편된 연대는 8월 20일부로 제6사단에 배속되어 군위군 부계 일대의 대율동, 492고지, 527고지 등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9월 2일 북한군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제8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15사단은 죽장-자양-영천 접근로를 중심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제8사단의 방어진지가 돌파당했고, 육군본부는 9월 2일 대구로 이동한 제5연대(-1)를 9월 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했다. 연대는 기룡산 일대에 배치되어 격전을 치렀으나, 적의 공세에 밀려 영천 남쪽의 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혈전 끝에 8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함으로써 국군 제2군단이 적을 포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9월 10일부로 제8사단에서 원대 복귀한 연대는 이날부터 반격을 가하여 영천을 탈환하고 적을 격멸함으로써 영천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영천전투에서 박 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히 싸우다 9월 14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현 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40묘역-2판-166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9-ㄹ-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