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진(朴南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45977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박남진 이병은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으로 계속 진격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1950년 11월 초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청천강 선으로 공격 중이었고, 제7사단은 덕천에서 북진 중이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11월 22일 묘향산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연대는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연대는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38도선으로 철수한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연하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선정한 후 포천-김화 도로를 중심으로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제7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의 명에 의거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의 봉래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이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침투한 북한군 제9, 제31사단 침투부대를 격멸하기 위한 수색정찰을 실시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여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만경대산과 영월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2월 11일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일대에 배치된 국군 제8사단은 적의 집중 공격에 밀려 원주 후방으로 철수했다. 이에 돌파구 측방의 창동리에 배치되었던 사단은 측방이 노출되면서 20km 정도 후방으로 철수했으나, 적은 틈을 주지 않고 추격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이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지를 사수하다 적탄에 맞아 2월 11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진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ㅎ-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