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식(朴男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3327
  • 전몰일자 : 19520203

공훈사항

박남식 일병은 경상남도 거제군(現 거제시) 동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인 1950년 10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남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12월 13일 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계속해서 사단은 횡성 일대의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등에 투입되어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 내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사단은 군단의 우측 전방 부대로 5월 31일에 중공군 제2군단을 추격하다가, 6월 4일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향해 공격하여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5월 하순 공세 시 박남식 일병은 6월 7일 부대원들과 산두곡산을 공격하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여 9월 중순경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 제7교육대 조교요원으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제주도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적 게릴라 잔당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 파괴했다. 이들의 유격활동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 37도선까지 남하하자 더욱 극심해졌다.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 소탕 작전을 수행했고, 박남식 일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제7교육대 기동타격대로서 소탕 작전에 앞장서 왔다. 1952년 2월 3일 남제주군청 인근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박남식 일병은 격멸조로서 게릴라와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7-ㅍ-039)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