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수(朴南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45356
  • 전몰일자 : 19520704

공훈사항

박남수 일등중사는 전라남도 여천군 율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던 1950년 12월 하순, 의정부의 육군 제2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남수 일등중사가 연대로 전입했던 1951년 2월 중순, 제2사단은 안동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4월 28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으로 이동하여 북한강 동쪽 지역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12일에는 김화 일대의 바조봉-승암고개-적근산 서측의 두목리까지 진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유엔군사령관은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방어진지 보강과 전력증강에 집중하는 것을 확인하고, 적 진지에 대한 공격작전을 실시하여 휴전협상을 촉진하기로 했다. 이에 박남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군단의 김화-금성진격작전계획에 의거 10월 13일에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1단계로 10월 16일까지 복정령과 492고지를 점령하고, 2단계로 10월 17일부터 공격하여 21일까지 522고지-477고지-하진현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그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서 하진현 일대를 탈취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며, 제2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당시 야외기동훈련(FTC)은 전선의 교착으로 별다른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을 강화하고,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한다는 전략적인 목적 아래 취해진 전기전술 숙달훈련이었다.
제2사단은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6월 29일부로 미 제40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면서, 박남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진지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그가 지휘하는 소대는 7월 4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20-ㄱ-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