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선(박남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1017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박남선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1949년 말경부터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지자 조국을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4월경 육군에 입대하여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본부는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와 제18연대(-1)를 의정부 축선에 투입하고,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교도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박 일병은 육본 교도연대에 편성되어 창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은 7월 한 달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다, 8월 1일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한편, 1950년 8월 초경 제1공병단이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되어 육본직할 부대로 편성되었는데, 이때 박 일병은 동 단으로 전속되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기에 건설공병단은 제2군단에 배속되어 보현산 지구 전투에서 북한군 제766부대의 남진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동 단은 8월 중순경 육군본부로 복귀하여 전방 사단과 군단의 공병 능력을 초과하는 교량·도로 건설 및 보수와 비행장 건설 및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작전으로 전환,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한·중 국경 부근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 일대로 철수했다. 중공군 제3차 공세에 앞서 북한군 제2전선부대가 12월 하순부터 중동부 축선으로 사전 침투하여 아군 후방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건설공병단은 12월 30일 횡성 일대에서 주보급로 보수작업을 하는 중에 이들 북한군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았다. 박 일병은 항상 앞장서서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군의 보급로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4-ㅁ-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