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산(朴南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551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남산 일병은 경기도 수원시(現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5월 하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수도경비사령부 제3연대로 배치되었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49년 6월 20일 서울 용산에서 기갑연대, 제2연대, 제17연대를 기간으로 창설되어 서울을 방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49년 8월 10일 제17연대를 배속 해제와 동시에 제18연대를 배속시켰고, 11월 15일 기갑연대를 육본 직할로 배속 전환했다. 또한 사령부는 전쟁 직전 1950년 6월 15일 제7사단 예하의 제3연대를 배속시켰고, 20일에는 예하 제2연대를 제6사단으로 배속 전환하고, 제6사단 예하의 제8연대를 배속시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의정부 축선에 배치되었던 제7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전쟁 개시 첫날인 6월 25일 포천이 전차를 앞세운 적의 공격에 함락되고, 6월 26일에는 의정부마저 함락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 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박남산 일병이 소속된 수도경비사령부 제3연대를 6월 25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교도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하여 창동 방어선에 배치된 국군을 지원하도록 했다.
창동 방어선에는 국군 5개 연대가 배치되어 있었으나, 실제 병력은 1개 연대 규모에도 못 미쳤다. 국군은 우이동-92고지(수유리)-278고지(수락산 서남단)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했다. 27일 새벽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을 가했다. 장병들은 일제 사격을 가했으나 전차는 피해 없이 남진했고, 실탄을 전부 소모한 국군은 미아리 방어선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남산 일병은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교전하다가 미아리 방어선으로 철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9판-7면-0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ㅁ-01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