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복(朴南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800913
  • 전몰일자 : 19501207

공훈사항

박남복 이등중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49년 1월 3일, 경기도 시흥의 제17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제17연대가 6월 20일 서울 용산으로 이동할 때, 그는 제6사단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박남복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 지원하고 있었다. 이후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6월 30일부터 원주를 거쳐 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여 8월과 9월에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공병부대는 공격시에 보병부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했다.
제6사단은 함창-문경-원주-춘천 방향으로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했고, 10월 6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해서 화천-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추격하여 성천을 점령했다. 이후 21일에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박남복 이등중사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며 진격 속도를 증가시켰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이에 제7연대는 10월 26일에 초산을 점령하고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날 동림산 일대에 은거 중이던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아군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에 박남복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도 겹겹이 쌓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130km가 넘는 험준한 산길을 따라 철수하여 11월 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이후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 11월 24일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공격 2일 차인 11월 25일 야간부터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큰 피해를 받고 철수하기로 했다. 박남복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12월 초에 북창-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했다. 공병중대는 12월 7일에 고랑포 일대에서 후방에 잔류하고 있던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복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ㅋ-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