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두(朴南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2833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박남두 중위는 1928년 4월 18일에 전라북도 전주시(現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당시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피·아 간에 전선이 38도선 일대에서 교착된 시점에, 과거의 군 경력을 인정받아 1952년 5월 초순경 장교로 임관하여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남두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술적으로 유리한 감제고지 확보를 위해 고지쟁탈전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11월 10일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제5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박남두 중위가 소속된 제27연대는 우측 전방 883고지 일대를 방어하도록 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이후 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 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옴으로써,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한 끝에 적을 격퇴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6월 10일 제60군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을 공격을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박남두 중위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중공군의 6월 공세 시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883고지 방어진지에서 교전 중 6월 15일 기습 침투한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두 중위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68143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6-ㄷ-02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