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두(朴南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067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박남두 일병은 전라북도 전주시 진북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힘겹게 저지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8월 중순, 부산에 설치된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24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9월 초, 미 제24사단은 낙동강 돌출부 방어진지를 미 제2사단에 인계하고 미 제8군의 예비로서 경산에 집결하고 있었다. 얼마 후 기계-안강-경주 축선에 대한 북한군의 공격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미 제8군에서는 9월 6일 미 제24사단 주력을 경주에 투입하였다. 사단은 9월 7일 오후 12시 30분에 먼저 투입된 잭슨특수임무부대를 처치특수임무부대로 확장 개편하였다. 처치 특수임무부대는 9월 8일 후방을 위협하던 약 1개 연대 규모의 북한군을 운제산(482고지)에서 격퇴함으로써 경주에 대한 위협을 제거했다.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9월 16일부터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이날 제24사단은 왜관 남쪽에서 낙동강을 도하하여 북한군을 공격했으나, 폭우로 항공 및 포병사격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북한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알고 9월 18일부터 낙동강 선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사단은 9월 18일 야간에 왜관 남쪽에서 낙동강을 도하하여 9월 23일 구미를 점령하고, 28일에는 대전을 탈환했다. 박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대전 일대에 준동하던 잔적 소탕작전에 참가했다. 적들은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대전 시내에서 건물을 이용하여 게릴라전을 실시했다. 그는 10월 1일에 건물에 숨은 적들을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3판-4면-2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명비(082-ㅇ-1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