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덕(朴南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44404
  • 전몰일자 : 19520727

공훈사항

박남덕 일등중사는 1929년 8월 15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남덕 일등중사가 전선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서울 함락 후 낙동강까지 철수했던 국군이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친 상황이었다. 이어 반격 및 북진작전에 돌입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세 차례의 공세로 또다시 평택-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다.
박남덕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2월 25일 중공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사단의 공격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을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다. 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평창 일대에서 대관령 방향으로 조심스러운 반격작전을 계속해 설악산으로 진출하였다. 6월 4일 적은 강력한 박격포 사격의 엄호하에 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의 전초진지인 산두곡산과 원봉 전장의 1209고지를 공격해 왔으나 치열한 격전을 펼쳐 격퇴시켰다.
1951년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하였다. 그 후 박남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12일에 시작된 전투에서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1952년 지형능선과 수도고지에 대한 제한공격이 무위로 끝난 후 전선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7월에 들어 연대는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였다. 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6일부터 8일까지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오직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남덕 일등중사는 1952년 7월 27일 강원도 김화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덕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ㄲ-02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