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남규(朴南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73848
  • 전몰일자 : 19530621

공훈사항

박남규 일등중사는 1925년 5월 31일 경기도 인천시 북평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을 진행하던 1951년 12월 14일에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남규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 가기 전인 1951년 11월 사단은 유엔사의 작전지침에 의거 방어진지 전방의 전초기지에 대해 두 차례(10월의 금성천 부근전투, 11월의 949고지전투)에 걸친 공격작전으로 탈취했고, 방어선을 금성천 분지 전방으로 추진했다. 이는 공산군으로 하여금 휴전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사단과 함께 양구 일대에서 FTC 훈련을 하다가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전방방어진지를 인수했다.
박남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우전방인 765고지-교암산을 주저항선으로 점령하고, 제2대대 장병들은 전진기지인 57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중공군들은 이 고지를 빼앗기 위해 4월 16일에 야간에 기습공격하여 탈취했다. 아군은 다시 공격하여 18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혈투가 있었으나 되찾지 못했다.
제7연대는 5월 22일에 제19연대에 방어진지를 인계하고, 연대는 사단 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정비 및 진지보강공사,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박남규 일등중사는 12월 20일에 진전 수색활동 중에 적 침투조를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박남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3년 1월 1일부로 사단의 예비로 전환했다가 2월 5일부로 다시 우일선(동쪽)의 전방 방어지역인 교암산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연대는 주로 방어진지 보강, 수색 및 매복 작전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던 중 4월 27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강원도 묵호에 위치한 제59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 병원에서 의료진들에 의해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21일에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남규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25묘역-4판-320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8-ㅁ-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