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난수(朴蘭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39050
  • 전몰일자 : 19530611

공훈사항

박난수 이등중사는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現 신안군 지도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9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난수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1951년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으나,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양양으로 이동하여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13일에 국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군단 우측의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다가, 적이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사단은 피탈된 351고지에 역습을 전개하여 7월 13일 고지를 탈환한 후 몇 차례의 소규모 침공을 격퇴했다. 이후 사단은 11월 9일 적 대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한때 351고지를 상실하였으나 과감한 역습을 전개하여 재탈환에 성공하면서 고지를 확보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4월 15일 화천군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면서 주진지와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박난수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6연대는 좌측 전방 주방어선을 담당했다. 중공군은 6월 10일부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면서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이에 사단은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신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박난수 이등중사는 6월 11일 949고지 일대에서 소대원을 통제하며 중공군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난수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3판-3면-2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5-ㅎ-07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