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길봉(박길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03555
  • 전몰일자 : 19510104

공훈사항

박길봉 하사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면(現 도양읍) 관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을 준비 중이던 1950년 9월 19일,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선발되어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美 제25사단으로 전속되었다.
북한군 9월 공세 때 美 제25사단은 미 제5해병전투단을 배속 받아 북한군 제6·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을 격퇴하고, 마산방면을 지켜냄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서 美 제25사단은 1950년 9월 16일부터 총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북한군은 경상남도 창원시 북방 서북산 등 험준한 산악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포병과 항공지원 하에 9월 17∼18일 양일간 맹공을 가하였으나 적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쳐 진전이 없었으나, 9월 19일 적이 진지를 포기하고 은밀히 철수하는 낌새를 알아채고 공세로 전환했다.
박길봉 하사가 소속된 美 제35연대는 사단의 선두에서 추격하여 9월 25일 진주를 탈환하고, 함양-남원-이리를 경유 9월 29일 강경을 탈환 후, 후방지역에서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박길봉 하사는 전투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지만 적정수집, 포로신문 등의 임무를 추가적으로 수행하며 사단의 작전에 기여했다.
美 제25사단은 11월 2일 후방지역 임무를 국군 제3군단에 인계하고, 평강 지역으로 이동하여 11월 15일부터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차후작전을 위해 청천강 선으로 북진했다. 박길봉 하사는 美軍 부대원들과 함께 11월 24일 시작된 2차 총공세(크리스마스 공세)에 참가하여 온정리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때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우인접의 국군 제2군단이 먼저 붕괴되자, 美 제25사단은 후방차단 위협을 느껴 철수를 실시했다. 이후 사단은 철수를 거듭하여 12월 중순에 임진강 하류 제방을 연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 대규모 공격을 받아 서울에서 철수하여 천안 일대로 이동했다. 그 후 1951년 1월 25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에서 수원-김량장선을 확보하고,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막아냈다. 박길봉 하사는 1월 4일 서울에서 천안으로 후퇴하던 중 수원 부근에서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길봉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0판-4면-1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4-ㅇ-10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