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길동(박길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26097
  • 전몰일자 : 19520402

공훈사항

박길동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38도선 일대에서 피·아 간에 전선이 교착된 시점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1년 7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술적으로 유리한 감제고지 확보를 위해 고지쟁탈전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강원도 양양, 간성 일대에서 제1군단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매복, 보급로 경계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 동북방의 가칠봉 일대로 이동하여 제5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고,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사단은 11월 중순 가칠봉 일대 진지를 미 제7사단에 인계하고, 육군본부 직할로 전환되어 양구 일대의 파로호 남안에 배치되어 부대정비를 하면서 북상하는 잔적을 소탕했다.
1951년 11월 27일 휴전회담에서 ‘현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하기로 합의됨에 따라 감제고지 쟁탈전이 더욱 격화되었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강원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주 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확보하고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박 하사는 4월 2일 적 소규모 부대가 침투하자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적을 무찌르다 중상을 입고 제59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당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길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43묘역-3판-145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ㅅ-1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