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길동(박길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29081
  • 전몰일자 : 19510803

공훈사항

박길동 일병은 전라북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6월 30일 제1103야전공병단에 현지 입대했다.
박길동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공병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인제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제1103야전공병단은 북진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11월에 창설되어 제3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3군단은 1950년 10월 16일, 제5사단(1950. 10. 8 재창설, 대구)과 제11사단(1950. 8. 27 창설, 영천)을 배속 받아 창설되었다.
제3군단은 중공군 5월 공세 때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강원 인제군 오미재고개가 중공군에게 차단당한 가운데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하진부리 일대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 1951년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공병단은 육군본부 직할로 후방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7월부터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선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공병단은 대민 봉사 및 복구작업에도 투입되었다. 1103야전야공단은 국도 확장 공사에 기여한 공로로 1951년 12월 20일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후 공병단은 전투 병력의 신속한 기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도로와 교량 보수에 주력하면서, 때로는 직접 전투에 투입되어 적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박길동 일병은 분대원과 함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 작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1951년 8월 3일 주보급로 보수 임무를 수행하다 적의 기습을 받고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길동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6판-5면-2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ㄴ-06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