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길규(박길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5259
  • 전몰일자 : 19510501

공훈사항

박길규 일병은 1929년 2월 25일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9월 8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미 제25사단에 배치되었다. 그는 첩보수집, 편의대 활동, 포로신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사단 작전에 기여한 후, 10월 초순경 제3사단 제23연대로 전속되었다.
사단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11일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진지가 돌파당하면서 1951년 1월 2일 군단 작전명령에 따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는 2월의 킬러작전, 3월의 리퍼작전 때 강원 횡성, 인제의 봉화산, 하진부리 일대에서 격전을 치렀고,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가리봉,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가리봉을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길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00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ㅍ-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