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기화(박기화)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10298
  • 전몰일자 : 19501104

공훈사항

박기화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양산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23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박기화 이등중사가 전선에 배치될 무렵 전선 상황은 대구로부터 포항의 형산강까지 동부에서 적군과 대치 중이었다.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안강 북쪽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으나, 미처 진지도 편성하기 전에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많은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포병과 공군기의 지원으로 고지를 재탈환하였다.
박기화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9월 공세의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는 원산을 탈환한 후 10월 15일까지 원산을 경계하다가 제3사단에게 그 임무를 인계하고 영흥으로 차량 이동하여 제1, 제18연대와 합류하여 영흥에서 함흥-흥남과 그 북방으로 공격작전을 전개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22일 신포에서 북청을 향해 진격하던 중 미상의 적과 조우하여 이들을 격퇴하고 패잔병 13명을 생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24일에는 신북청을 출발, 이원을 점령하고 다음날인 25일에는 단천을 점령하였다. 그러는 동안 동해안 축선의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단천에서 성진을 목표로 진격 하던 중 그 중간지역인 마천령에서 증강된 1개 연대 규모의 북한군으로부터 완강한 저항을 받았으나 27일 5시간의 공격 끝에 그 정상을 탈환함으로써 성진시가를 감제할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11월에 접어들어 박기화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이 길주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성진 북쪽에서는 북한군 제41사단 및 제507여단 등이 길주를 위시하여 그 북쪽 명천-어랑천 등지에서 축차적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박 이등중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기화 이등중사는 1950년 11월 4일 남대천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기화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09-ㅇ-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