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승(李基承)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20292
  • 전몰일자 : 19530328

공훈사항

이기승 상병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2년 2월 12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과정을 마친 후 1952년 5월 14일 해병대 제1연대 제3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공산군과 유엔군이 휴전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며, 서부전선에서는 국군과 유엔군이 전초기지들을 점령한 후 방어진지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병대 제1연대는 월산령지구 방어작전을 마치고 1952년 3월 17일 장단·사천강지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강화하였고, 4월부터 적진에 대한 정찰과 기습작전을 실시했다. 장단·사천강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해병대 제1연대가 점령하고 있는 전초진지 일대는 155고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발 50m 미만의 구릉과 전답으로 된 개활지이며, 적의 감제하에 있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이었다.
우기인 7월과 8월에 아군은 주로 적의 침투에 대비한 매복작전을 실시했으며, 적진에 대한 기습공격은 사천강의 수위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실시했다. 우기에는 수위의 변동이 잦아서 적진을 향해 출발할 때에는 낮았던 수위가 복귀할 때에는 수심이 2m를 훨씬 넘는 경우가 많아 화기와 장비를 가지고 도하작전을 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우기가 끝나고 9월부터 아군과 적은 전초진지를 보강하며 화력지원하에 기습과 정찰빈도가 높아지며 피·아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수차례나 반복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이듬해까지 계속되었다.
1953년 3월이 되자 적은 아군의 중요한 방어고지인 155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이곳에 대한 정찰과 공격이 잦았다. 이에 이 상병이 소속된 제3대대는 먼저 적진을 기습함으로써 적의 도발을 견제하고자 했다. 이리하여 제3대대는 3월 28일 적진에 대한 기습을 감행했는데 이 상병은 적진을 향해 과감하게 공격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승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9판-4면-04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ㅁ-09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