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승(이기승)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68199
  • 전몰일자 : 19510916

공훈사항

이기승 하사는 1928년 12월 31일 경기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하순에 대구에 위치해 있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승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을 무렵 제6사단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1950년 9월 16일부터 신령 지역에서 반격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맞춰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6사단 장병들은 거침없는 진격으로 10월 말에는 선두부대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동두천 북쪽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 하사와 장병들은 12월 31일 야간에 대규모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오전에 적들의 측방공격에 위협을 느껴 철수했다. 1월 7일에 장호원 부근의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가 2월 초순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러던 중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 반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0일에 반격으로 전환하여 계관산-북배산-지암리-춘천 동북방-화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28일에 화천을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6월 5일부터 총공격(일명 파일드라이버 작전)을 개시했다.
이기승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취봉을 탈취하고, 이후 사단은 적근산-주파령을 잇는 선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이기승 하사는 전투 중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부산에 위치한 제3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정성껏 치료를 받았으나 부상이 워낙 심해서 회복하지 못하고 1951년 9월 16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승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6-ㅍ-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