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술(李基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27150
  • 전몰일자 : 19520901

공훈사항

이기술 일병은 전라북도 부안군 인산면(訂正 변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7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술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양구 북쪽 해안분지(펀치볼) 확보 작전 시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이 전선을 1951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했다. 그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2일까지 군 예비로서 양양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을 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사단은 1월 13일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단의 주저항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제35연대, 이기술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를 예비로 배치했다. 당시에 사단 전초진지는 예비연대에서 투입해서 작전을 실시했으나 북한군은 소규모 수색정찰 활동을 하는 등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북한군은 7월 10일 22:00시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사단은 다음날 제35연대 제2대대 및 제3대대가 역습을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7월 12일에는 제27연대로서 동 고지를 탈환하도록 하였으나 진전이 없었으며, 다시 제35연대가 7월 13일 20;00시에 역습을 전개하여 351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기술 일병은 351고지를 사수하려고 선두에서 소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1952년 9월 1일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술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ㅊ-08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