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순(李基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55725
  • 전몰일자 : 19530715

공훈사항

이기순 하사는 1930년 12월 22일에 전라남도 해남군 남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0월 30일, 백암산 일대에 위치한 제6사단으로 현지에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순 하사가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951년 11월 하순, 제6사단은 백암산을 좌우로 연하는 주저항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양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하다가 1952년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전방방어진지를 인수했다. 그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우측지역인 765고지-교암산을 연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 하사가 소속된 대대는 방어진지 전방의 전진기지인 57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중공군들은 4월 16일에 야간 기습공격으로 575고지를 빼앗았다. 이후 제7연대는 5월 22일에 방어지역을 제19연대에 인계하고, 사단 예비로 활동하며 주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했다.
제6사단은 10월 21일부로 전투지경선이 확장되면서 예비인 제7연대를 전방지역으로 투입하였다. 제7연대가 점령한 지역은 사단의 우측 방어지역으로서 교암산을 좌우로 연하는 선이었다. 이후 사단은 예하 3개 연대가 교대로 전방연대와 사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게 했으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작전지역 내로 수색 및 매복작전을 강화하였다.
사단 지역은 1953년 되어서도 쌍방 간에 별다른 전투행동이 없는 전선의 소강상태는 계속되었다. 이기순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4월 1일부로 사단 좌측 방어부대가 되면서 봉화산 지역을 담당했다. 이 시기에 휴전은 포로교환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타결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에 공산군은 휴전이 되기 전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공격지역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공군 2개 사단이 7월 10일에 아군의 교암산 방어지역 일대에 대해 기습공격을 실시했다.
제6사단은 7월 14일까지 봉화산-교암산 지역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했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교암산을 적에게 내어주고 주파령-적근산을 잇는 선(일명 와이오밍 선)으로 철수했다. 그가 소속된 제7연대는 방어지역 좌측의 적근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이곳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7월 15일 전투에서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6-ㅇ-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