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순(李基順)

  • 군별 : 육군
  • 계급 : 대령
  • 군번 : 15613
  • 전몰일자 : 19501011

공훈사항

이기순 대위(군번체계로 볼 때에 대위)는 1926년 10월 9일에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군의 공격징후가 농후하던 1949년 11월 17일에 호국군 간부(예비역)에서 현역 육군 소위로 편입하여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하고 있던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신속히 소양강 북쪽의 주방어진지에 배치되었다. 장병들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특공조를 운용하고, 반격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행동으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이기순 대위는 당시 공병(工兵)으로서 장애물 설치를 지원했다.
이기순 대위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6월 27일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이후 문경-함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전투를 하면서 7월 31일까지 지연전을 전개하고,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후 8월 12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전면적인 철수를 하여 위천 북방의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점령하고, 8월과 9월에 있었던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오전 9시에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제6사단은 신녕 일대에서 반격을 하여 9월 22일까지 강력히 저항하던 조림산 일대를 탈취했다. 이때부터 제6사단 장병들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소탕하며 추격작전을 실시하여 의흥-함창-보은, 괴산을 거쳐 9월 29일에 충주에 집결했다. 이기순 대위가 지휘하는 공병중대는 적이 도망가면서 설치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7연대는 선두에서 진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에 진입했고, 계속 횡성-홍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5일에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고, 8일에 화천을 점령했다. 10월 10일에 김화를 거쳐 금성을 점령하고 신고산 방향으로 진격 준비를 했다.
북한군의 저항 강도는 북으로 올라갈수록 커졌다. 이기순 대위가 지휘하는 공병중대는 제7연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임무를 수행했으며, 그는 선두에서 진두지휘했다. 공병중대가 10월 11일에 신고산 방향으로 진격할 때에 중대 규모의 북한군으로부터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민첩하게 대응하여 적들을 단숨에 제압했으나, 그는 선두에서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순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7판-3면-15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ㅈ-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