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수(李基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710408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기수 하사는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를 지키고자 1950년 7월 중순 제1교육대에 입대했다. 이 하사는 동년 8월 20일 제7사단이 재창설되면서 사단의 제5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천전투에 투입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을 격멸함으로써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경주-안동-문경-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고,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다. 사단은 개천 일대의 비호산에서 3일부터 7일까지 중공군 제1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사단은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고, 이후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2월 9일 제5포병대대가 예속 해제되고, 대신 제16포병대대가 사단에 예속되었고, 이 하사는 제16포병대대로 전속되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적의 공격에 밀려 횡성 북방을 거쳐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미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했고, 사단은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하고 적을 섬멸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사단은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고, 리퍼작전(3. 7.~3. 31.) 때는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쉴 새 없이 적진을 향해 포격을 가하다 적의 포격에 맞아 4월 2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수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4599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2-ㅂ-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