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수(李起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9200673
  • 전몰일자 : 19520216

공훈사항

이기수 일등중사는 서울시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7월 15일 제2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애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낙동강전선의 신녕전투, 안강전투에 투입되어 분전하며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했고, 이때 연대는 경주-문경-충주-서울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연대는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초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에서 중공군과 일전을 치른 후 묘향산 남방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의 반격을 받고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후 5월까지 연대는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월 하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고, 연대는 6월 초순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을 물리치고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양구군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와 883고지에서 적과 격전을 치르며 이 고지들을 확보했다. 연대는 9월 26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육본 직할로 소속이 변경되어 양구 일대에서 부대정비를 했다.
연대는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12월 25일 중공군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왔고, 연대는 28일까지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연대는 1952년 2월 11일 중공군을 크리스마스고지로 유인하여 타격을 주려 하다가, 오히려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13일까지 공방전을 펼친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2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2월 16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수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5753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11묘역-4판-2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4-ㅌ-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