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수(李基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4741
  • 전몰일자 : 19501113

공훈사항

이기수 일병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20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기수 일병이 부대에 도착했을 때, 제6사단은 패주하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10월 4일에 춘천을 점령하고, 10월 6일에 모진교 일대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김화–성천–양덕–순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23일에는 희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24일에 시작된 유엔군의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에 참가하여 10월 26일에는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한 후 제7연대 제1대대 병력은 국경선 경비임무에 돌입했다. 이때 은밀히 침투한 중공군으로부터 후방을 차단당하여 전 부대는 현 위치에서 진격을 중지하고 철수를 했다. 사단 장병들은 30일까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공중보급을 받으면서 험준한 산로를 따라 130km의 원거리를 각각의 부대별로 남하하여 개천으로 집결했다.
이기수 일병이 소속된 수색중대는 항상 사단의 제일 선두에서 작전하며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으로 보고하고 아군 후방으로 침투하는 적을 발견할 시에는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당시는 중공군에게 후방이 차단된 상황이라 수색중대는 소대별로 분산하여 철수를 감행했다. 중공군은 곳곳에 은밀히 숨어 있다가 철수하는 제6사단 장병들을 괴롭혔다. 사단은 철수 간에 전투손실이 막대하여 개천에 도착해서는 재편성 및 부대정비에 집중했다.
이기수 일병이 소속된 수색중대는 차후 예정된 공격작전을 위해 적정수집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던 중 11월 13일에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수집 활동을 하던 중 적 부대에 발각되어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ㅈ-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