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수(李基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1172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이기수 일병은 1920년 1월 20일에 경상북도 경주군 서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백척간두의 위기에 있던 1950년 8월 28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수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에 제6사단은 북한군의 격렬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사단 장병들은 반격작전 명령에 의해 9월 16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강력히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파하고 9월 23일부터는 전투의지를 상실하고 도망가는 북한군에 대해 함창-보은과 괴산-충주-원주-횡성-홍천-춘천 방향으로 맹렬한 추격작전을 시작했다.
이기수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0월 5일에는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그는 연대 장병들과 함께 계속해서 화천-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을 거쳐 10월 19일에 성천을 점령했고, 21일에 성천을 출발하여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진격했다.
제2연대는 10월 25일에 온정리에서 압록강변의 벽동을 목표로 진격하던 중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에 기습을 당한 제2연대는 유엔군사령부의 청천강 방어계획에 따라 개천으로 집결했다. 그가 소속된 제6사단은 11월 14일에 군단과 함께 개천에서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이 11월 24일 크리스마스 공세작전을 시작할 때에 제6사단은 군단의 예비로서 제7사단을 후속했다. 공격 둘째 날인 25일 전방에서 공격하던 제7사단이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중공군은 이미 제6사단 후방까지 차단하기 위해 26일 새벽에 공격을 개시했다. 이날 그는 중공군과의 치열한 교전 중에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ㄹ-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