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수(李基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304600
  • 전몰일자 : 19500817

공훈사항

이기수 이등중사는 전라남도 여수시 종산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48년 6월 5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기수 이등중사는 미원 전투에 투입되었다. 당시 상황은 매우 험난하였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 무렵 북한군은 갈령, 화령장, 이화령, 조령, 죽령에서 소백산맥을 신속히 돌파하고 상주와 안동 방향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이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북한군의 진출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으며, 다음날에도 전차 3대와 장갑차 12대로 전력을 증강하여 공격을 재개한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이기수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7월 21일 전선정리계획에 따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 이등중사를 비롯한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연대는 신주막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 제1사단보다 한발 앞서 유학산에 진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중인 연대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어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선두에 서서 전투에 임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수 이등중사는 1950년 8월 17일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1-ㅎ-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