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수(李基洙)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5

공훈사항

이기수 순경은 1929년 4월 16일 전남 나주시 영산포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구례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구례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도 경찰국에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할 것과 각 지서별로 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대처하도록 지시한 후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구례경찰은 남원-구례, 곡성-구례를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했고, 구례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하여 이리-전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사단·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이어서 7월 20일 익산을 점령했고, 그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하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도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7월 20일 전남 비상경비사령부는 보성으로 철수했고, 북한군은 7월 23일 광주·장성, 7월 24일 나주·화순·목포·장흥 선까지 진출했다. 구례경찰은 지리산 자락의 구례 마산면 지역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최대한 지연시키며 후방으로 이동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7월 25일 구례경찰은 북한군과 교전이 벌어졌는데,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수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ㅅ-00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