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세(李起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0631
  • 전몰일자 : 19510611

공훈사항

이기세 일병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12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이어 포병훈련소에서 박격포 주특기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제106중박격포중대에 배치되었다.
4.2인치 중박격포중대는 국본일반명령 제27호에 의거 1950년 12월 9일 제101중박격포중대가 창설된 이래 제102·103·105·106·107·108중박격포중대가 연이어 창설되었다. 제106중박격포중대는 제7사단에 배속 운용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1·4후퇴를 단행하여 평택-삼척을 연결하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중공군 신정 공세에 밀려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했고, 사단은 1951년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하고 적을 섬멸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사단은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에 평창 일대까지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으나, 영월에서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사단은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이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을 했고, 사단은 3월 6일 평창군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지역 내 잔적을 소탕하면서 속사리-창촌-현리-관대리 방향으로 계속 진격하여 4월 하순에는 인제 서측방의 관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 일병은 중박격포중대 포수로서 상황에 따라 각 연대를 직접 또는 일반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이 진격전에서도 혼신을 다해 박격포 사격지원을 하다 적 포격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6월 1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1판-8면-1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6-ㅋ-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