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성(李基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15993
  • 전몰일자 : 19511215

공훈사항

이기성 일병은 1930년 1월 17일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5월 20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분연히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7사단은 중공군 5월 공세에 밀려 강원 홍천군 풍암리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속사리-하진부리-대관령 일대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중공군 5월 공세 이후 중공군과 유엔군은 피아 간에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7월 10일 최초로 양측 대표가 휴전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무렵의 전투양상은 휴전협상에서의 설전과 더불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진지전으로 진행되었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고, 이에 따라 양구 북방의 방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연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554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고 9월 2일 목표를 확보했다. 이어 연대는 적의 역습을 격퇴하고, 공격을 재개하여 9월 18일 백석산의 길목에 있는 917고지를 점령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백석산 동측의 894고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26일 백석산 주봉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양구로 이동했다. 이 전투에서 윤 이병은 앞장서서 진격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3-ㄴ-08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