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성(李基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5639
  • 전몰일자 : 19510921

공훈사항

이기성 일병은 1931년 1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하순 경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성 일병이 부대에 배치받을 무렵의 전황은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북한군 및 중공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사단은 美 제10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7월 말까지 재편성과 부대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1951년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하여 8월 31일 공격을 개시하여 9월 4일에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 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을 점령했다. 사단의 공격목표인 1,211고지는 가칠봉에서 큰 계곡 건너 서북방에 우뚝 솟은 감제고지로서 사단 방어선을 완전히 감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의 능선과 그 북방 931고지 동측방에 위협이 되는 고지였다.
이에, 이기성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미 제38연대로부터 가칠봉을 인수받아 최초 제27연대를 주력으로 1,211고지를 9월 9일 최초 점령하였으나 적의 역습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하였으며 10월 1일에 사단 총 공격으로 2차 점령 및 철수, 다시 10월 8일에 제27연대가 공격하여 3차 점령하였으나 또 다시 적의 역습으로 철수했다. 비록 최종적으로 1,211고지를 점령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사단은 끈질긴 전투로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굳게 지켜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전투에서 이기성 일병은 1,211고지를 최초 점령 후 적의 역습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하여 방어 중, 9월 21일 분대원과 함께 사단 사령부와 예하연대의 통신망을 점검하다가 적의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성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08묘역-1판-13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ㄴ-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