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성(이기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205937
  • 전몰일자 : 19511014

공훈사항

이기성 하사는 제주도 제주읍 용담동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1948년 6월 중순에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동년 10월 28일에 제17연대가 경기 시흥에서 창설될 때에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서울 용산을 거쳐 1949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38도선 경계 및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이기성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하루를 겨우 버티고 다음날인 26일에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대전으로 이동하여 육본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지연전에서 화령장전투, 낙동강방어선에서 기계-안강전투, 인천상륙작전 후 수도탈환작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서울의 주요시설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제2사단이 11월 7일 서울에서 재창설될 때, 그는 제32연대 창설 요원으로 차출되었다. 이후 사단은 의정부, 포천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다가 유엔군의 주력이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에 엄호한 후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맞아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951년 1월 7일에 충주를 거쳐 2월 13일에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원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4월 28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전투지역인 청평 일대로 이동했다.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홍천 연하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당시 이기성 하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하여 제압하고 6월 중순경에는 적근산-육단리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중 사단은 상급부대 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제32연대 장병들은 8월과 9월에 걸쳐 두 차례에 걸친 공격 끝에 탈취했다. 그리고 사단 장병들은 진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군단 작전계획에 의거 10월 13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이기성 하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492고지-복정령-하진현 방향으로 공격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둘째 날인 10월 14일에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성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9060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8판-5면-1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ㅅ-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