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성(李基聲)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29365
  • 전몰일자 : 19510308

공훈사항

이기성 하사는 1927년 12월 21일에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 및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고 있던 시기인 1950년 8월 중순,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성 하사가 부대로 전입 했을 시기에 제2사단은 11월 7일부로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이어 11월 11일과 13일에 신편 된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재창설 직후 서울에서 포천-평강 지구로 이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은 중공군 침공에 호응하여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는 등 후방교란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이는 북진작전을 하고 있던 국군과 유엔군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그가 소속된 제31연대는 홍천 일대에 근거지를 설치하고 북한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기성 하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12월 8일부로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방어선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장병들과 함께 곧 닥쳐올 중공군 기습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보강에 집중했다.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주공격 방향으로 하여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후방이 중공군에 의해 차단되면서 방어진지는 하룻밤도 버티지 못하고 와해되어 철수하였다.
제2사단 장병들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청평을 거쳐 여주로 이동한 후 7일에 충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부대를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경계를 실시했다. 그리고 북한군 제10사단이 안동까지 침투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실시하자 2월 13일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이기성 하사는 3월 8일에 소대원들과 함께 일월산으로 출동하여 적 침투부대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하다가 적을 발견하고 전투 중에 적의 흉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성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5면-11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8-ㄱ-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