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성(李起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6836
  • 전몰일자 : 19520817

공훈사항

이기성 일병은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던 1950년 12월 16일에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성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951년 1월 중순에 충주 일대에 집결하여 충주-단양-풍기 간 병참선경계를 실시했다. 이후 2월 13일에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원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패잔병 소탕작전을 완료하고 4월 28일에 다시 미 제9군단으로 배속되어 청평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하여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유엔군사령관은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적극적인 공세행동을 하도록 명령했다.
제2사단은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두 차례(8월2일~8일, 9월 1일~3일)에 걸친 공격으로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13일에 김화-금성진격작전을 개시하여 10월 18일까지 연대별로 교대로 공격하여 김화 북쪽 14km에 있는 금성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기성 일병이 소속된 통신대는 전방 연대를 원활히 지원하여 사단과 통신망을 잘 유지토록 하여 작전의 성공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다가 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했다. 사단은 사창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이후 제2사단은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되어 있던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이기성 일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수시로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는 8월 17일에 소대원들과 함께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수집을 하던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전투가 벌어졌으며, 격전 끝에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20-ㅁ-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