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성(李奇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60247
  • 전몰일자 : 19520101

공훈사항

이기성 소위는 경기도 안성군(現 안성시) 미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해군에서 1949년 4월 15일부로 신설 해병대로 편입하여 창설부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기성 소위는 해병대 제1대대(1950년 12월 20일 부대개편 이후 제1연대 예속)에 소대장으로 배치되었다.(육군직할 제7대대 소속으로 되어 있으나 인적사항과 군번 및 전사일자 고려 해병대 제1대대로 조정)
1950년 9월 15일 이기성 소위가 소속된 해병대 제1대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서 교두보를 확보한 후, 9월 16일 인천 시가지에서 잔적을 소탕하면서 부평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후 9월 21일 서울 연희동 104고지전투, 연희고지전투를 거쳐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다. 1951년 1월 24일 미 해병 제1사단에 배속된 이기성 소위의 제1연대는 경북 영덕 방면으로 출동하여 영덕-안동의 연결도로를 확보하고 일대의 적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2월 15일 LST 803정으로 묵호에 상륙한 연대는 육군 제3군단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삼척을 거쳐 영월로 이동했다.
그 후 연대는 2월 19일부터 3월 15일까지 영월지구작전, 3월 18일부터 4월 3일까지 홍천지구전투를 수행한 후 의명 북진을 위해 화천으로 이동했다. 이후 연대는 중공군의 춘계 공세로 홍천까지 밀렸다가 유엔군의 제3차 반격작전(1951년 5월 23일~6월 15일) 시에 강원도 양구 일대로 다시 진격했다.
6월 초 신캔자스선(화천저수지-해안분지(펀치볼)-거진) 확보를 위해 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된 이기성 소위의 연대는 6월 4일부터 2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북한군 제12·32사단의 저항을 물리치고 도솔산(1,148고지)을 확보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연대에 ‘무적해병’이라는 휘호를 내렸고, 이후로 해병대를 상징하는 구호가 되었다.
계속해서 연대는 7월 7일부터 30일까지 대우산전투,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924고지(김일성고지)와 1,026고지(모택동고지) 전투, 9월 5일부터 1952년 3월 17일까지 강원도 양구 일대 월산령 방어전투를 수행했다. 이 전투에서 이기성 소위는 1952년 1월 1일 북한군 제14·3연대와 대치하던 월산령에서 수색정찰을 진두지휘하던 중,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 제36육군병원으로 응급 후송되었으나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성 소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ㅅ-02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