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성(李起聲)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19153
  • 전몰일자 : 19530609

공훈사항

이기성 하사는 1929년 10월 1일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휴전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되던 1952년 6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익힌 후 육군직할 제5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1952년 여름부터 공격작전을 펴던 적이 가을에 접어들어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고 아군 전초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하였고 그 일환으로 서측방 백마고지에 대한 공격도 실시하던 상황이었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쌍방은 1952년 말까지 계속된 치열한 고지쟁탈전 후 전선정비를 하면서 휴전회담의 최대 걸림돌인 포로문제의 조기 타결을 목표로 하되 자신들의 입장 관철을 위한 영향력의 행사, 휴전과 관련하여 보다 양호한 방어선의 확보, 그리고 정치, 심리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전쟁의 종결 등 군사. 정치적 목적에서 새로운 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군사전략의 모색에 분분하였다.
적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 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다가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되자 작전에 양호한 기후조건을 이용하여 유엔군 전초진지에 대하여 제한된 규모이지만 집중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4월 20일부터 시작한 상병 포로교환이 계기가 되어 4월 26일 중단된 휴전협상의 본회담이 6개월 만에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월부터 하계공세, 즉 휴전 전 ‘최후의 공세’라 칭하는 대공세를 취하였다.
이 하사가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반복되면서 적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위기에 놓인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기성 하사는 중공군의 공세에 따른 방어 작전에 참여하여 전투 근무지원 임무를 수행하다 1953년 6월 9일 양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성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7339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88-ㅎ-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