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섭(李基燮)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53792
  • 전몰일자 : 19530526

공훈사항

이기섭 하사는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8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엔군은 38도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 배속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주 저항선을 방어하며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 전선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소규모 전초전이 반복되는 가운데, 연대는 사단의 우전방 연대로서 9월까지 큰 전투 없이 주 저항선을 방어하면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사단의 주 저항선 전방에는 ‘피의고지’와 ‘독수리고지’로 불리는 748고지와 572고지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고지들은 사단의 전초진지였다. 사단 정면의 적은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3사단이었다. 9월 28일 밤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를 비롯한 주 저항선 일대에 전례 없이 강력한 포격을 집중하며, 사단 주력을 투입하여 공격을 가해 왔다. 이에 사단은 전방 연대로 방어와 자체 역습을 가하면서 예비인 제18연대를 투입하여 10월 2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동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작전, 매복작전, 적진 탐색과 포로획득을 위한 전투정찰작전 등의 작전을 지속 수행했다.
1953년 4월 2일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서전으로, 사단 주 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26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섭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9-ㅁ-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